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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재미있는 것

비명을 찾아서 - 복거일

오래전에 읽은 책이다.

무심코 책꽂이를 보다가 생각나서 다시 뒤적여보았다.

나의 청춘의 한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는 책이다.

동생이 소개해준 작품이었는데 어느새 몰입해서 밤을 세워 읽었던 작품이었다. 읽으면서 나름대로 고민도 했었고 고개도 갸웃거리면서 의문도 가져보았던... 생각을 하면서 읽을 수 밖에 없었던 책이다.

요즘이면식상하리만치 자주 등장하는설정, 즉 우리나라가 아직 일제 식민지 치하라면... 이라는 가정 속에서 쓰여진 작품이다. 부제목인 '경성 쇼우와 62년'은 1987년이라고 알고 있다.(맞나?) 그 시기에 주인공은 평범한 가장으로서 회사원으로 살고 있다.

일단 문학성으로 치자면, 그리 뛰어난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학성만으로 치자면이다.

당시 나의평가는 '미숙하지만 생각할 것이 많은 작품'이었다.동생은 고개만을 끄덕였었던 것 같다.

지금도 사실은 이 작품이 왜 나에게 그렇게 크게 영향을 주었는지 정확히게 말할 수는 없다. 문학 평론가들처럼 구구절절하게 해석할 능력도 없지만 별로 크게 할 말이 없다. 그저 평이한 스토리라인(좀 더 심각하게 말하면 지루할 정도다), 평이한 인물들, 개연성이 떨어지게끔 느껴지는 지루한 사건들, 마지막 한 방에 터뜨리는 큰 사건... 그다지 문학적 풀롯이 짜임새 있다고는 말할수 없다. 하지만 결국 나는 이 작품으로 밤을 세웠고 눈을 뗄 수가 없었고 손에서 놓지 못했다.

이 작품의 매력은 읽는 내내스토리에 끌려가면서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으면서 수긍하거나 부정하는 작업을 반복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작가는 독자를 설득하지 않고 평이한 서술을 통해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한가지 문제는 이러한 특징이 작가의 계산된 의도인지, 문학으로 녹여내지 못한 역량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작품을 좋아한다.

최근에 이 책이 상 하권으로 다시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예전판 한 권짜리 깨알 같은 글씨의 두꺼운 책이다. 내가 엄선한 책꽂이 로얄층에 위치하고 있다. 스캐너가 있으면 표지 사진도 올리고 싶지만... 언젠가 스캔이 가능해지면 올려야겠다.

지금도 종종 되뇌는 이 책의 구절이 있다. 가장 마지막에 주인공이 떠나는 장면의 독백이다.

-길이 보이는 한, 나는 비참한 도망자가 아니다. 길이 보이는 한, 난 망명객이다. 내가 나일 수 있는 땅을 찾아가는 나는 망명객이다.-

그리고 가장 가슴 아팠던 건... 상해임시정부에 대한 어느 신문기자의 기사를 주인공이 읽던 장면이다. 허름하고 다 쓰러져가는 어느 건물에 임시정부가 남아 있음을 알게 되는 그 장면이 내가 이 작품에서 최고로 꼽는 명장면이다.

덧붙여 이 작품을 계기로 복거일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읽었었다.

달기지에서 달성한 남북한 통합을 그린 '파란 달 아래'

시간여행을 통해 임진왜란 직전으로 가버린 '역사 속의 나그네' (뒷 편이 나오면 좋으련만)

그외 수필 몇편...

공무원도 의무 퇴출시킨다는 이 마당에 중요한 일 하나 마무리짓고 커피 마시면서 잠시 글을 써본다. 오후부터는 다시 전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