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그런 단상

역지사지(易地思之)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

은월 2007. 8. 6. 16:02

역지사지(之)라는 말이 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라는 말이다. 바꿔서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지극히 도덕적인 말이다. 일반적으로 나보다 못한 상대와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면 '그래도 내가 낫네'라는 위안을 얻기 위한 말로 쓰이거나 약자가 강자에게 악다구니를 쓰면서 항변하면서 쓰는 말이다. '니들이 이렇게 돼봐!!! 그런 말이 나오나!!!' 정도의 뜻일 것이다....

얼마전에 장애인 편의시설 점검과 관련하여 서울시내를 다녀온 B씨의 경험을 듣고 사람들이란 참 어쩔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나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자괴감도 들었다.

요점은, 전동휠체어를 탄 중증장애인과 함께 청계처을 비롯한 서울시내 곳곳을 돌면서 화장실을 비롯한 편의시설을 점검하고 있었더란다. 어느 시장길로 들어서고 보니 사람은 많고 길은 좁아서 참 난감했더란다.결국 전동휠처어가 겨우 지나갈수 있는 좁은 길에 부딪혔는데 맞은편에서 목발을 짚은 지체장애인 아주머니가 오고계셨단다. 양쪽이 머뭇거리다가 결국 전동휠체가 양보를 하고 나중에 진입하려고 했는데 그 아주머니가 전동휠체어를 지나치면서 한마디 하셨단다.

"복잡한데 왜 나오고 XX야. 저런 사람들은 나오지 못하게 해야하는데...."

일행 5명이 동시에 얼음 상태로 10초간 정지했단다.

이 얘기를 듣고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대화 참가자 모두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다.

웃는 일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또 한가지...

꽤 지위가 있는(나름대로) 모 단체(기껏해야 동네 골목대장)회장이 장애체험에 나서게 되었다. 이 회장도 지체장애인이고(2급이며지팡이를 짚는 정도)장애인의 설움에 대해 그동안 여러가지로 투쟁(웃긴다..)을 해왔던 사람이다. 그가 드디어 타 장애 체험을 하게 되었다. 시각장애인이 되어 약 20분간 어둠을 헤매야 하는 것이다. 들어가기 전까지 온갖 핑게를 대며 빠지려고 했다. 그게 얄미워 온갖 구실을 대며 밀어 넣었더니 "나 그냥 이대로 살래!!!"... 얼씨구?? 못들은 척하고 뒤로 빠졌다. 결국 나보다 앞서 들어가게 되였고 다음으로 내가 들어갔는데 흥미있는 경험이었다. 나와보니 그 회장... 벤치에 앉아서 오묘한 표정으로 하늘을 보고 있었다.후에 장황한 모험담을 펼치며 금강경에 쓰인 문구와 연관하여 크게깨달음을 얻었단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지만 진리는 어디에나 있다나...감동해서 눈물이 다 난다.... 젠장...

역지사지(之)...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상상만 하면 되니까...

그런데상상한다고 해서 이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더이상한 일인지도 모른다. 같은 상황이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거늘 입장을 바꾼다고 나의 기본적인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바꿔서 생각하더라도 결국 내 생각일 분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역지사지를 강조하고 그것만 잘 하면 모든 것이 원만하게 풀려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역지사지라는 말은 나 개인에게 주는 면죄부가 아닐까? 자, 생각해보니 그 사람 참 힘들겠더라... 그 사람에게 잘 대해줘야겠다....내가 그 입장이라면 그렇게 안한다.. 등등...

내가 있는 위치가 말 그대로 역지사지(之)를 잘 해야 하는 곳이다.

근데 영 글러먹은 것 같다.

생각할수록 부아가 치민다....

적어도 당분간은 생각하지 말고 흘러가는대로 나둬야겠다.....

딱 한달만 그렇게 하자...

홀가분해라~~~